국외교육훈련

Overseas Training

게시판
훈련과정 장기일반과정(비영어권) 훈련국 일본
훈련기관 쯔꾸바대학 훈련기간 2015.09.15 ~ 2018.03.14
훈련과제명 고령 사회의 도래와 경찰 활동의 변화
보고서제목 고령 사회의 도래와 경찰 활동의 변화
추천 27
국문요약문

고령사회의 도래와 경찰활동의 변화: 소년범죄의 감소경향에 대하여
(이 요약문에는 참고문헌 목록이 첨부되어 있지 않습니다. 참고문헌 목록은 보고서 본문의 것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단, 본문의 참고문헌 목록에 나타나지 않은 참고문헌들의 경우, 이 요약문의 각주에 기재하였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악경찰서
경위 인찬욱


1. 보고의 목적
이 보고서는 2015년도 비영어권 장기일반과정의 훈련결과보고서이자, 위 보고자의 일본 쓰쿠바대학 사회학 석사 학위 논문으로 작성되어 제출되었습니다.
위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보고서는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고령화와, 또 그것과 동반되는 다양한 사회 변화가 앞으로의 경찰 활동에 미칠 영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초의 훈련 계획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고령화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사회 변화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고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고령화의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인 소자화나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 둔화 등, 다양한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서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 보고서도 고령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전반에 주목하기보다는, 고령화가 나타나는 가운데 앞으로의 경찰활동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영역 가운데 하나에 집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출했던 훈련계획서에서, 본 보고자는 고령화를 비롯한 사회의 변화가 앞으로의 경찰활동에 가져오게 될 두 가지 과제에 대해 언급했었습니다. 본 국문요약의 서두에서는, 비록 훈련결과보고서에 모두 포함되지는 못 하였지만, 본 보고자가 당초 설정하였던 연구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다소간의 분량을 할애하고자 합니다. 또한, 이 두 가지 연구 주제 가운데, 소년범죄의 감소 경향을 연구보고서의 최종적인 주제로 선택한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훈련계획서에서 제시한 두 가지 과제 중, 먼저 언급했던 것은 고령자 범죄의 증가였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몇몇 국가의 사법 통계자료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의 형사범 검거 건수의 증가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령자의 일탈 행위 자체가 늘어난 것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의 주류 범죄학, 범죄사회학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통념은, 고령자는 모든 연령층 가운데 범죄를 가장 적게 저지르는 연령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몇몇 국가에서 나타나는 고령자범죄의 증가는, 통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향이 새롭게 나타난 것은 아닐까, 또 그것이 사회 전반의 고령화와 맞물려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궁금증이, 훈련과제를 위와 같이 설정한 이유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가장 먼저 겪은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서는, 고령자 범죄의 증가 문제가 경찰 또는 사법부에서 발행하는 백서에서 다루어지기도 하며, 학계의 논의도 비교적 일찍 시작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흥미로운 주장은, 사실은 고령자 범죄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엄벌주의가 확산한 것이 고령자 검거 건수를 늘렸다는 하마이 고이치(2011) 등의 주장입니다. (이 주장의 상세 내용에 대해서는 본 보고자가 현지보고서로 제출한 “일본의 고령자범죄 연구 동향”을 참조하셔도 좋습니다.)
엄벌주의란, 경미한 위법행위도 형사법적인 처벌을 가하려고 하거나, 법 자체를 개정하여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움직임을 말합니다. 하마이는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이 나타날 때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보다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지적합니다. 그는 먼저 고령자들이 사회의 다른 연령층과 비교하여 사회적 혹은 경제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위치에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형사사법 체계는 이러한 계층에게 보다 가벼운 처벌이 내려지도록 작용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이들에게 보다 무거운 형벌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탓에 사법기관의 수사에서 스스로를 잘 방어하지 못하며, 경제적으로 소외된 탓에 피해도 잘 보상하지 못한 나머지,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하마이의 설명입니다.
또한,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요인이 사회적 혹은 경제적 배제에 있다면, 처벌이 가지는 범죄 예방효과는 그러한 배제가 완화되는 방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마이는 일본의 형사사법이 응보에만 주목한 나머지, 고령범죄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생활을 재건하는 것에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고령자들은 경미한 범행을 반복하게 될 수도 있고, 그에 따라 누범가중을 받아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마이는 고령자의 검거 건수보다, 고령자가 차지하는 수형자의 비율이 더욱 빠르게 증가하는 것이, 이러한 ‘사회적 배제의 연쇄작용’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마이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고령자범죄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검증을 거치지 못한 가설 단계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본 보고자가 현지보고서로 제출한 “일본의 고령자범죄 연구동향 제2편”을 참조하셔도 좋습니다. 고령자범죄문제에 대한 실증적 연구들을 다룬 해당 현지보고서에서는, 아직까지 고령자범죄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데이터와 선행연구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고령자에 대한 조사결과가 비교적 얻기 어렵다는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학생이나 직장인들은, 각각 그들이 소속된 조직을 통해 사회과학자들의 접근을 받고 조사될 수 있지만, 직업을 가지지 않고 각각 자택에서, 혹은 시설에서 생활하는 고령자들에 대한 조사는 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고령자범죄의 문제는 사회적 관심을 적게 받아왔고, 조사연구가 활발한 일본에서조차 아직 가설 검증에 활용할만한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습니다.
설령 데이터가 없더라도 위와 같은 하마이의 문제 제기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본 훈련결과보고서는 한국 경찰의 정책 형성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따라서 단순히 가설을 추가적으로 제시하거나 논박하는 것을 넘어, 데이터를 분석하여 근거에 기반한 정책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수 있다고 본 보고자는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본 보고자는, 데이터 분석을 통한 가설의 검증이 가능한 두 번째 과제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고, 그 내용을 다음 절의 내용과 같이 요약해 보았습니다.

2. 연구과제: 소년범죄의 감소경향에 대한 고찰
앞 절에서 훈련과제 중 노인범죄의 증가 경향이 소개되었다면, 이번 절부터는 소년범죄의 감소 경향이라는, 고령화를 비롯한 사회 변화가 가져온 또 다른 주제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소년범죄에 대한 미디어 보도에서는 소년범죄가 흉악화되고, 더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주목받곤 합니다. 한국 검찰청의 범죄분석과 같은 범죄통계가 인용되는 경우에도, 소년범죄가 증가하는 장‧단기적 추세가 보다 자주 사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소년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있고, 소년범의 처벌 연령을 낮추는 등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때 일본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있었고, 실제로 소년범의 처벌 연령이 2000년, 2007년, 2014년에 이루어진 세 차례의 소년법 개정에 따라 낮아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의 사회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소년범죄가 흉악화 되었다거나 늘어났다는 점이 아니라, 소년범죄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이 다카요시(2012)가 요약한 것처럼, 사실 일본의 낮은 범죄율은 그 동안 일본의 빠른 경제성장과 자주 연관지어져 왔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청년의 실업률 문제가 심각했던 2000년대 초반부터, 소년범죄는 도리어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본 보고자가 부처지정과제로 제출하였던 “일본의 소년범죄 감소론”을 참조하시면 논의에 관한 보다 상세한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년범죄의 감소 원인에 대해, 본 보고자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도이 다카요시(2012)가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일본의 소년범죄의 성격이 고도성장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일 쇼크 이전의 고도성장기, 그리고 그 이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안정성장기에는, 계층 이동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직장을 얻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희망을 품고 있을 때, 목표 달성의 좌절은 강한 불만을 유발할 수 있고, 불만은 곧 일탈행위의 요인이 됩니다. 즉, 고도성장기의 젊은이들에게는 강한 열망과, 그것의 좌절이 모두 일탈행위의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버블 경제가 붕괴한 이후, 일본 경제는 지금까지 저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정사원으로 입사하면,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이른바 일본형 고용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도성장기에 약속되었던 수준의 임금의 상승이나 계층의 이동도 더 이상 장담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상황이 변화하자, 젊은이들의 열망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고 도이는 말합니다.
이제 그들은 더 나은 삶, 더 많은 수입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일본사회의 고령화는, 일본 경제가 더 이상 고도의 성장을 이룰 수 없는 인구적 요소입니다. 오늘날 상식이 되어 버린 일본의 초고령화는, 젊은이들에게도 강하게 의식되어, 가까운 앞날에 고령자에 대한 부양부담이 무거워지는 것을 누구나 의식하게 합니다. 때문에 젊은이들은 지금까지 부유한 부모세대의 지원 속에서 누려왔던 생활을 잃어버릴까 불안해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더 나은 삶이 아니라 현상의 유지가 목표가 됩니다. 더 높은 위치에 대한 열망이 없다면, 그것에 대한 좌절은 더 이상 일탈행동의 원인으로 작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도이(2012)가 말하는 소년범죄 ‘감소’의 이유 중 한 가지 요인은, 젊은이들이 가지는 삶의 목표, 또는 문화적 목표가 변화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본 보고자의 연구 문제도, 이러한 젊은이들의 변화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에 있었습니다. 사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도 소년범죄의 감소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황지태(2010)가 지적했던 것처럼, 그 배경에는 학교교육의 확대와 가정 경제의 전반적인 안정화와 같은 사회적 변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소년의 일탈행동은 경제적 부유함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경제적 성취에 대한 열망이, 경제적 여유가 생겨나는 이상으로 강해진다면, 부유해지는 와중에도 더 강한 열망과 더 강한 좌절감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 사회학과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상대적 박탈론의 요지입니다. 그러므로 소년범죄에 감소 경향이 나타난다면, 거기에는 분명 사회 또는 문화적 요인들이 존재하리라고 보아야만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본 보고자가 한국의 소년범죄가 감소하고 있다고 보는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범죄에 대한 연구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범죄 데이터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사법기관이 집계하는 공식 통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범죄 피해경험을 조사하는 피해자 조사,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일탈 경험을 조사하는 자기응답식 조사가 그것입니다. 비록 공식통계상에서 때때로 소년범죄의 증가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무거운 죄명일수록 감소 추세가 현저합니다. 단, 성범죄에 한해서는 매우 현저한 증가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에 주의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또한, 범죄피해자 조사와 자기응답식 조사에서 나타나는 경향도, 1990년대부터의 소년범죄가 현저히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령, 소년들을 대상으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1990년대부터 3회에 걸쳐 실시하였던 범죄피해조사를 보면, 1990년대와 비교하여 2010년에 이루어진 조사의 범죄피해율은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입니다.
이렇게 한국의 소년범죄가 감소추세를 보임에도, 아직까지 한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감소의 이유를 밝히고자 하는 연구가 거의 없습니다. 이 주제를 다룬 국내 연구는 앞서 소개한 황지태의 연구(2010)가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황지태의 연구도 소년범죄가 감소하는 이유에 대해 직접 분석하는 연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왜 소년범죄가 감소할 수 있었는가에 관하여, 일본의 사례를 참조하여 이론을 구성해보고, 이를 데이터를 분석하여 검증할 수 있다면 한국의 소년범죄 추세에 관한 하나의 새로운 주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년범죄의 감소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본 보고자가 주목한 선행 연구는 학업부담가설입니다. 1990년대에 김준호(1990)에 의해 제시되었던 학업부담가설은, 머튼의 아노미론(1968)과 허시의 사회통제론(1969)을 합친 것과 같은 이론틀을 가지고 있고, 쉽게 말하자면 부모가 설정하는 높은 학업 목표치가 학생에게는 스트레스가 되고, 이것이 몇 가지 사회학적 요인을 거쳐 소년비행을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론은 1990년대 초반에 대두하였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는 데이터를 통한 검증에 실패하게 됩니다. 마침 소년범죄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한 시기에, 학업부담가설도 데이터를 통한 검증에서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 보고자는, 이 학업부담가설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 형태의 비행이 1990년대 초반에는 존재하였으나, 점점 존재하지 않게된 것이 아닌가하는 가설을 설정해보았습니다.
이 문제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습니다. 소년비행의 학업부담가설은, 학력주의가 소년의 생활 전반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국의 맥락에서 제시되었던 가설입니다. 일본의 사회학자 아리타 신(2006)이 지적한 것처럼, 한국은 학력주의적 신념이 학부모와 학생 모두에게서 강하고, 그것의 핵심 요소는 ‘공부를 통해 누구든 평등하게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1945년의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점점 더 강해져온 것은 제가 본문 제1장에서 요약한 선행연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학업부담가설이 대두된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학력주의는 모든 소년들과 학부모들이 공유하는 것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는 이 흐름에 변화가 생겨났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학력주의적 믿음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제 좋은 학력이나 학벌을 얻더라도 그것만으로 사회적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또 노동경제학, 혹은 교육사회학자들의 최근 연구를 보면, 대학 진학이 가지고 있던 소득향상 효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약해지고 있고, 또 소위 명문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 사이의 차이가 매우 큽니다. 즉, 명문대학을 갈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소년들에게 학력주의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지만, 좋은 대학에는 진학하기 어려운 대다수의 소년들에게는 대학 진학 그 자체는 가시적인 지위상승의 수단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좋은 학벌의 획득’이라는 목표가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이 공유되어 있다고는, 이제 더 이상은 말하기 어렵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개천에서 용나는 식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학생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일도 점점 더 어렵게 되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게 된 결과, 소년범죄의 학업부담가설이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요? 이것이 제 연구의 물음입니다. 김준호가 1990년에 학업부담가설을 제시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공평한 학력획득과 지위상승이라는 신화는 한국사회에서 유지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신화에 대한 믿음이 깨어진 지금, 학력획득의 실패가 가져오는 ‘아노미’적 심리 상태는, 학력획득이 가능한 일부 고소득, 고학력 계층에 한정된 것이 아닐까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저는 이 점을 2003년부터 조사가 이루어진 한국청소년패널조사의 자료로 검증해보려고 하였습니다. 검증의 방법과 결과, 그리고 그것에 따른 결론은 이하 3절부터 간단히 소개해보겠습니다.

3. 검증과 결과, 그리고 결론
앞부분에서 이 보고서의 가설을 간단히 소개하였고, 이 절부터는 검증 방법과 그 결과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보고서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사용된 데이터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03년부터 조사하기 시작하여 공표한 자료인 “한국청소년패널조사”의 자료입니다. 이 자료는 중학교 2학년생을 조사대상으로 선정하여, 대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조사한 자료로, 제주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해당 학년 학생을 모집단으로 가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학업부담가설이 2000년대의 중고등학생에게도 검증될 수 있는지, 또 검증될 수 없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에 매우 적절합니다.
사실 이 자료는 학업부담가설을 검토하기 위해 이전에도 사용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러한 연구에는 남재봉의 연구(2009), 이성식과 전신현(2009)의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학업 부담, 즉 학업 스트레스가 소년비행과 그다지 관계가 없었다는, 학업부담가설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본 보고자는 앞선 연구의 한 가지 전제를 수정해야만 제대로 된 학업부담가설에 대한 검증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 수정해야만 하는 전제란, ‘학력주의’가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이 공유되어 있다는 전제입니다. 물론 이러한 전제는 김준호의 학업부담가설에서도 나타났던 것이었고, 우리 사회의 상식에 비추어 크게 잘못되었다고 보기에도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 보고자는 앞 절의 말미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이제 더 이상은 모두가 학력획득을 통해 ‘공평하게’ 지위 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유효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업부담이 소년비행에 미치는 영향은, 그 학생 본인의 사회경제적 계층이나 학업 성적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보고 검증을 실시해야만 한다는 것이 본 보고자의 주장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기초분석 이외에도 중회귀분석, 교호작용항을 도입한 중회귀분석이 실시되었습니다. 분석에 관한 변수의 정의 등은 본문 제2장에서 정리되었고, 분석은 제3장과 제4장으로 나뉘어 실시되었습니다. 제3장은 종속변수를 학업 스트레스로 하는 분석이 이루어졌고, 제4장은 종속변수를 소년비행으로 하는 분석을 시도하였습니다. 또한, 학력주의가 중학생과 고등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다고 보고, 중학교 2학년생과 고등학교 2학년생에 대해 각각 분석을 실시하여 비교해 보았습니다. 각 장에서는 다양한 독립변수가 사용되었지만, 그 중에서 핵심은 학업 스트레스와 사회 계층, 또는 학업 스트레스와 학업 성적의 교호작용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회 계층과 학업 성적은 상관관계가 큰 변수이므로, 최종적인 중회귀분석 모형에는 주로 학업 성적과 학업 스트레스의 교호작용항이 검토되었습니다. 만약 이 연구의 가설대로 학업 스트레스가 소년비행에 미치는 영향이 사회적 지위나 성적에 따라 다르다면, 교호작용항이 종속변수에 미치는 영향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것이고, 또 그 방향성은 성적이 좋을수록 학업 스트레스가 소년비행에 유의미한 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일 것입니다.
중회귀분석 모형을 추정한 결과는 이 보고서의 가설과 상당부분 합치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등학생들에게서, 성적과 학업스트레스의 교호작용항이 소년비행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고, 교호작용항의 수치별 기울기를 추정해본 결과도 가설에서 다룬 것처럼 성적이 좋을수록 학업스트레스는 비행을 유발한다는 결론을 나타냈습니다. 성적이 나쁜 학생은, 학업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도리어 비행을 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타나, 학업스트레스가 더 이상은 목표 달성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중학생에 대한 검증 결과는 오히려 김준호(1990)의 학업부담가설에 가까운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중학생의 경우, 학업 스트레스는 목표의 달성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학생의 경우, 학업 스트레스는 부모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또 그것으로 인해 소년비행이 증가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학업성적과 학업 스트레스의 교호작용항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어쩌면 남재봉의 연구(2009), 이성식과 전신현의 연구(2009)에서 학업부담가설이 기각되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앞서 연구에서는 학업부담은 중학생과 고등학생에게 모두 유사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살펴본 결과는, 고등학생에게 학업 스트레스란 목표 달성 또는 학교생활과 주로 연관된 것이라면, 중학생에게 학업 스트레스란 주로 부모와의 관계와 연관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고,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만, 아니면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모두 합쳐 분석에 사용한다면, 학업부담이 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많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연구의 결과는, 학업부담이 성적, 또 그것과 깊이 연관된 사회적 계층에 따라 매우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회의 상류층에 속하는, 그래서 대체로 성적도 좋아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는, 여전히 대학 진학은 지위 상승에 가까운 목표이고, 그것으로부터 좌절한다면 깊은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반해 그러한 여건에 있지 못한 학생에게는, 학업 부담이란 좌절한다고 해서 불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학교와 장래의 목표에 대해 가지는 스스로의 목표치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좌절되면 우울감을 느낄지언정, 소년비행에는 이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일본에서 앞서 나타났던 소년들의 정신세계의 변화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징후인지도 모릅니다. 일본은 2000년대 이래로 공식통계마저 곤두박질할 정도의 소년범죄의 감소추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연구의 결과는, 어쩌면 한국도 이러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제 지위상승의 열망을 가지기보다 지금의 생활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소년들을 옥죄어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도이가 지적한 것처럼, 소년범죄는 더 이상 좌절감의 분출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받기 위한 외로움의 표출입니다. 열망이라는 목표가 사라진 청소년의 생활에서는, 스스로가 잘 하고 있는지 확인 받을 객관적 목표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고, 그래서 일탈행동을 함으로써 주변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한다는 것이 일본 소년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흐름에서 본다면, 앞으로의 소년들에 대한 경찰활동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소년들의 비행이 고전적인 원인들, 즉 열망의 좌절이나 사회적 통제의 부재로 설명될 수 없는 것으로 변해간다면, 고전적인 공식적 통제, 즉 엄벌화와 이것에 따른 일반예방효과란 아무런 효과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외로움과 불안함에 지쳐 범죄를 저지르는 자에게, 처벌의 가벼움 또는 무거움은 애초에 고려 대상조차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경찰들도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 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소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왜 일탈행위에 빠져드는지를 지금 시점에서 재검토하고, 또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경찰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야만 합니다.
이 보고서의 연구 결과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한 가지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학업 스트레스를 느낀 나머지 소년들이 비행을 한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경찰이 소년비행에 대한 대책을 고려하면서, 학업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을 염두에 둔 각종 활동에 집착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물론 그러한 활동이 가지는, 사회와의 연대 강화는 당연히 소년비행의 예방에 도움은 될 것입니다. 다만 학업으로부터의 스트레스에서 소년을 단순히 해방시킨다기 보다는, 학업과 지위상승이라는 문화적 목표를 상실하고 불안해하는 소년들이 삶의 다른 가치를 찾도록 돕거나, 학업을 통한, 굳이 지위상승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회적 가치의 획득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학교나 가족들과의 새로운 연결점을 찾아주는 활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첨부파일